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작위 요구자/유럽/프랑스 (문단 편집) ==== 아르투아 백작 ==== ||<-2> [[파일:1280px-Blason_province_fr_Artois.svg.png|width=200]] || || 관련 칭호 || 아르투아 백작 || || 작위 요구자 || [[카를 폰 합스부르크|카를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]][*B] || || 전임자 || [[오토 폰 합스부르크]] || || 후임자 || 페르디난트 즈보니미르 합스부르크로트링겐 || || 계승 실패 원인 || [[피레네 조약|1659년 프랑스에 합병]] || [[부르고뉴 공국]]과의 동군연합이 되었던 아르투아 백국은 1477년 용담공 샤를의 딸 [[마리 드 부르고뉴]]가 [[막시밀리안 1세(신성 로마 제국)|막시밀리안 1세]]와 결혼하여 부르고뉴 공작 칭호가 합스부르크 가문에 넘어가면서 [[합스부르크 가문]]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으나, 1482년에 아라스 조약으로 프랑스에 합병되었다. 그러다가 이후 아르투아가 1493년에 상리스 조약으로 [[신성 로마 제국]]에 넘어갔으며, 합스부르크 가문이 스페인 [[압스부르고 왕조|압스부르고 왕가]]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대공가로 나뉘어진 후부터는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가에서 대대로 아르투아 백작 칭호를 쓰며 아르투아를 통치했으나, 훗날 1659년에 [[피레네 조약]]으로 아르투아가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다. 이후로도 압스부르고 왕가에서 명목상으로나마 아르투아 백작 칭호를 계속 썼으나, 압스부르고 왕가 단절 후 스페인 [[보르본 왕조|보르본 왕가]]의 첫 국왕인 [[펠리페 5세]]가 잠시 아르투아 백작 칭호를 썼다가 [[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]]으로 인해 펠리페 5세가 아르투아 백작 칭호를 포기함에 따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대공가가 아르투아 백작 칭호를 쓰게 되었다. 현재도 아르투아 백작 칭호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에서 쓰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